영화 '버닝'의 관객 만족도는 개봉 당시 53.2%에 불과했지만, 해외 평론가들로부터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이게 끝?"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고, 그냥 멍한 상태로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계속 이 영화가 머릿속에서 맴돌더라고요. 설명은 잘 안 되는데 자꾸 떠오르는, 좀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존재감을 찾아 헤매는 세 사람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단순히 배고픈 게 아니라, 삶의 의미 자체에 대한 갈증 같은 겁니다. 해미는 이걸 직접 언급하면서 자신이 그런 상태라고 말하죠.
그런데 저는 해미를 보면서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라진 인물이라기보다, 애초부터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던 사람' 같았거든요. 영화 초반에 없는 귤을 까먹는 장면도 그냥 연출이 아니라,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힌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중요한 건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믿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요.
실제로 해미는 가족과도 단절된 상태고, 주변에 제대로 연결된 관계도 없습니다. 벤의 말처럼 돈도 없고, 외로운 상태죠. 그런데 노을 지는 장면에서 춤추는 모습은 또 이상하게 자유로워 보입니다. 저는 그 장면이 좀 불편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 불편함 자체가 의도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자유로워 보이는데, 진짜 자유는 아닌 느낌.
벤이라는 인물은 더 묘합니다. 그는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설정인데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단순한 행동이라기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버려진 비닐하우스처럼요.
그리고 솔직히, 벤이 실제로 뭘 했는지보다 그 말이 종수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재미만 있으면 뭐든지 한다”는 말은 결국, 선을 넘는 데 아무런 기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순간의 의미
종수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탄원서를 쓰면서도, 글로 표현되는 아버지와 실제 아버지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되죠. 여기서 이야기의 관점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종수가 해미의 집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따라가는 느낌이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이거 혹시 다 종수 시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놓쳤던 부분인데, 다시 보니까 영화 전체가 거의 종수의 시점으로만 진행됩니다. 종수가 보고, 듣고, 느낀 것만 화면에 나오죠.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갑자기 다른 시점처럼 느껴지는 연출이 등장합니다. 그 지점에서 저는 살짝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게 결국, 우리가 보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종수의 해석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해미의 시계, 고양이, 벤의 행동까지 전부요.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는, 종수가 그렇게 받아들인 결과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더 찝찝합니다.
끝까지 명확하게 확인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불태움을 통한 재탄생
이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행위가 바로 “태운다”는 것입니다. 비닐하우스, 옷, 그리고 마지막 장면까지.
보통은 이걸 파괴로 볼 수 있는데, 저는 오히려 “정리”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종수는 계속 쌓아두기만 하던 인물이었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뭔가를 끝내버립니다.
물론 그 방식이 정상적이냐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하죠. 그런데도 묘하게, 그 순간 “이제야 뭔가 움직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없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행위. 해미가 없는 귤을 먹듯이, 종수는 확인되지 않은 진실을 이야기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기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는 거죠.
그래서 이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해미가 어떻게 된 건지, 벤이 어떤 사람인지, 마지막 행동이 정당한 건지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애매한 상태를 계속 남겨둡니다.
저는 이 영화가 완벽하게 잘 만든 작품이라기보다는, 일부러 빈 공간을 남겨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관객이 그걸 채우게 만드는 방식이죠. 그래서 더 불편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정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이해가 완벽하게 되진 않는데,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계속 걸립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이상하고, 동시에 가장 강한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